내가 생각하는 종교학

 

이 강의 홈페이지를 만든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는 이 난을 그 동안 공백으로 놓아두었다. 왜냐하면 종교학을 정의하려고 하면 그냥 막막해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종교학을 하면 할수록 그 연구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방법론적으로도 다른 인접학문과의 뚜렷한 경계를 짖는 것이 어려워졌다. 종교학을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일차적으로 정의를 내린다 해도, 다시 "종교"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데, 이것은 종교학내에서도 아직까지 해결을 보지 못한 문제이다. 혹자는 모든 (종교)학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그리고 이에 따라 그들의 연구범위가 설정되는 그런 획일적인 종교정의는 불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비생산적이라고 말한다.

 

그럼 "종교"는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흔히 "종교"하면 기독교, 이슬람, 불교 같은 세계종교를 떠올린다. 즉 이 종교를 연 창교자(創敎子)가 있고, 그의 언행에 기초를 둔 체계적인 교리와 이를 성문화한 성전을 갖추고 있으며, 이런 창교자의 정신과 교리를 따르려는 종교공동체를 갖춘 종교를 상상한다. 그러나 이런 정의에 따르다 보면 유대교, 힌두교, 신도(神道) 같은 창교자가 언급되지 않고 각 지역문화권에서 태동되고 발전된 오랜 전통의 민족종교는 물론이고 무속(shamanism)같이 창교자도 체계적인 교리체계도 또 결속된 신앙공동체도 갖추지 못한 민속종교는 "종교"의 카테고리에서 제외된다. 한편으로 "종교"를 믿음의 대상의 성질에 따라 정의 내리기도 하는데, 그 예로 한 개인 혹은 한 집단을 구속(救贖)해 줄 "유일신", "절대자",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종교"라 정의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종교정의는 종교학이 그의 발생지며 성장지인 유럽 내지 서구의 기독교 문화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비판을 받아 온지 오래다. 즉 이런 종교정의는 기독교 중심적인 시각의 반영이며 유일신 종교(그 중에서도 기독교)를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제국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많은 동양의 종교전통은 "종교"가 아니라 철학(불교) 혹은 윤리체계(유교), 혹은 습속, 미신(무속)으로 환원되고 만다. 따라서 종교정의를 접할 때 "누가", "", "이런 류"의 정의를 내리는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사회적인 강자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대상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힘을 행사하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될 수 있기때문이다. (, 기독교내의 이단시비). 강의시간에 흔히 듣는 질문 "불교가 종교입니까?" 혹은 "유교는 종교가 아닌 것 같은데요"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한국인들은 서구적 혹은 기독교 중심적인 종교정의를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다양한 종교전통을 수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종교정의라 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종교를 개인을 포함한 우주를 근원적으로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설명체계와 현실에서 이에 준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윤리적) 수행체계, 동일한 종교적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공동체,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의식을 반복적으로 확인케하는 의례를 그 주요한 구성요소로 갖추고 있는 것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의는 앞의 종교정의 보다는 포괄적이나, 현대의 다양한 종교상황을 다 포괄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많은 서구인들은 교회의 권위주의적인 성향, 위계질서에 반기를 들고 교회를 탈퇴하여 보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대면을 추구하며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기독교정신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동시에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다종교적 문화배경 안에서 많은 현대인들은 종교시장에서 제공되는 여러 종교들의 가르침이나 그 수행법을 "pick and mix"한다. 즉 한 특정한 종교에 억매이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에 맞게 다양한 종교내용을 취사선택하고 이를 조합하여 자신이 필요한 의미체계를 구성하는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갖고 있는 믿음체계는 모두 다 이러한 취사선택의 과정을 통한 산물이라 할 수 있지만 특히 현대인들은 종교전통으로 보다 자유롭게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수의 서구인들은 자신을 "I am not religious, but spiritual." 이라고 소개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제도종교에 대한 비판의식을 반영할 뿐더러, 자신의 영적 계발을 위해 다양한 (타문화권의) 종교전통들을 실험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위의 서구인들은 "종교적"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 던져진다. 위에서 소개된 정의를 따른다면, 이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또 종교적이지도 않다는 판단이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이러한 현대적 현상은 종교학의 조사연구 대상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적 종교현상을 조사연구하려는 종교학자는 보다 포괄적인 종교정의를 전제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는 "궁극적 의미"(the ultimate meaning) 혹은 "궁극적 관심"(the ultimate concern)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즉 종교는 개인들에게 그들의 삶과 주변상황을 설명하여 개인에게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제공하고, 이로서 앞으로의 행동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포괄적인 종교정의는 종교와 유사한 현상까지도 종교적인 현상으로 확장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이데올로기(쾌락주의, 마르크시즘)나 개인적 신조들도 위의 정의에 의하면 종교적 영역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갖고 있는 종교적 요소를 조사하는데 이런 식의 정의가 유익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결국 종교정의는 일괄적으로 내려지기 보다는 각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범위 설정 그리고 연구 관심사에 맞게 내려질 수 밖에 없다.

 

다시 종교학의 정의로 돌아가서 본인이 내린 잠정적인 정의는, 종교학이란 "다양한 종교현상과 이와 관련된 현상을 객관적으로 조사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면 종교현상을 다루는 다른 인접학문과 종교학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이 문제 또한 종교학계 안에서 많이 논쟁되어 온 주제이다. 혹자는 다른 인문과학과는 차별되는 종교학만의 종교에의 접근방식이 종교학의 정체성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흔히 거론되는 것이 epoché(holding back, 판단정지)이다.   자신이 가진  선입관이나 판단을 버리고  종교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관찰자의 선험적 판단의 개입없이 현상자체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인식론적으로    때 한 현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관찰자와 관찰대상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기에 관찰자의 특수한 시각, 의견, 기대가 완전히 배제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연구자의 태도로 "detached attachment"가 언급된다.   종교현상을 조사할  때 가능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되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현상에 대하여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든 것이다. 특히 조사대상이 겉으로 볼 때는 비이성적이고 따라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타종교인의 행동이나 감정,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고 느끼려는 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사안이다. 물론 이런 객관성과 주관적인 공감대의 형성이라는 두 극단의 자세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종교학의 소위 고유한 접근태도는 사실상 다른 인문사회과학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차용되고 있다. 따라서 과연 이런 접근방법이 종교학을 독립된 학문분야로써의 규정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인가하는 질문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학이란 종교현상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위하여 인접학문의 다양한 접근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따라서 종교현상에 대하여 다양한 설명/해석능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종교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분야로 인정받는데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특히 사회과학의 방법론이야말로 종교현상을 하나의 고유 영역(sui generis)으로 고립시키지 않고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상호영향관계를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 필요한 접근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   *   *